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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눈/사주명리, 타로, 주역, 관상

주역 둔괘의 해석- 괘사를 중심으로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첫번째가 건괘, 두번째가 곤괘로 모두 양, 모두 음을 뜻하는 괘다. 그리고 그에 이어 3번째로 등장하는 괘가 둔괘다.

 

 

 

둔은 주둔한다는 의미도 있고, 고대에는 창고라는 의미로도 쓰인 글자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주역에서는 혼돈(Chaos)로 해석한다.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주역의 건괘와 곤괘에 해당한다. 하지만 땅이 텅 비고 형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뒤이어 나오는데, 이것이 둔괘의 상과 유사하다. 

 

 

 

진화적으로 보면,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언어의 도움을 받아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할 무렵, 인간은 주위의 환경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혼돈의 시작이다. 뇌의 전전두엽의 발달과도 연관이 있다. 왜냐면 이론적으로 의식(전전두엽의 기능)은 무의식(인간의 신경 시스템, 호르몬 체계, 무의식 전반)에 반기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의식에 대두된다(사실상 무의식에게 이 문제는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수백만년의 유인원으로서의 생존경험과 그 몇 십배에 달하는 기간 동안 검증된 다양한 생명 기능들이 존재하기 떄문에)

 

 

 

수뢰둔 괘

 둔괘는 형상적으로 외괘(윗쪽에 자리한 괘)가 감괘(물을 뜻함), 내괘(아랫쪽에 자리한 괘)가 진괘(벼락을 뜻함)로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친다', '구름이 하늘에 떠 있고 벼락이 친다' 등의 물상으로 묘사된다. 흥미롭게도 초창기 원시지구의 대기 상황과 유사하다. 

 

 

 

이를 의리역(주역의 인간학적 의미를 중요시하는 해석법)적으로 보면, 둔괘란 어떤 일의 시작이나 단초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취해야할 태도, 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의 해설이라고 알려진 단전에서는 이건후라고 했다.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 즉,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되면, 먼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위계와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후란,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명적 장치들에 익숙해져서 그것의 신기함을 종종 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숨쉬듯 받아들이고 있는 하이어라키(위계와 질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강력한 전략이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전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문제상황에서 무엇이 좋고(길吉하고) 무엇이 나쁜지(흉凶한지)를 먼저 파악한다. 길흉의 하이어라키를 세우는 것이다. 길한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을 우리는 롤모델로 떠받든다. 이것이 제후다. 우리는 그를 마치 길잡이처럼 내세운다. 제후중의 제후가 곧 왕이고, 황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는 것과 같다. 과연 최초에 문명의 기틀을 세우려고 했던 인류는 무엇에 의지했을까. 막막했을 것이다. 둔괘는 이 막막함과도 가깝다.

 

 

 

사춘기, 대학생 새내기, 사회 초년생, 신혼 부부, 갓난 아기, 어떤 일의 시작에 있는 이들의 괘는 결국 모두 둔괘가 된다. 그것은 막막한 것이다. 따라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혼란스러움을 돌파하는 방법은 하이어라키를 세우는 것, 곧 제후를 세우는 것이다. 훌륭한 롤모델이 중요한 것이다. 

 

 

 

둔괘의 효사(각 효에 붙는 점사)는 다양하지만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역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익히 알겠으나, 의리역의 최고참은 왕필의 주에서 시작한다. 그는 제일 첫효와 마지막 효는 형식상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말해 6단계의 프레임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마치 달리기의 출발선과 결승라인처럼. 그것이 맞는지는 여러분도 함꼐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효사는 총 6개다. 이것을 6 발달 단계라고 불러도 된다. 모든 상황을 6가지의 발달 양태로 나누어서 본것인데, 둔괘 초구의 효사의 핵심은 "이귀하천, 대득민야(以貴下賤 大得民也)"의 구절이다. 풀이하면, 아래와 천한 것을 귀하게 여기니, 민을 크게 얻는다는 것이다. 둔괘의 괘사의 핵심이 이건후라는 점을 상기하면, 하이어라키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나, 그 하이어라키의 아래 쪽에 위치하게 되는 사람들/가치(천함)를 귀하게 여겨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 전반으로도 분배냐 성장이냐는 논의의 핵심이랄 수 있다. 분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하이어라키(이건후)를 세우고 이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위계 내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따라서 하이어라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분배(이귀하천)를 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하이어라키 유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것은 보수와 진보를 모두 아우르는 관점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이귀하천이 사실 필요없다. 귀한 것은 귀한 것이고 천한 것은 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괘사인 이건후가 보수적인 관점이라면 초구의 효사인 이귀하천은 진보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즉 사회 내에는 하나의 하이어라키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다양한 게임의 연속이다. 한 번의 게임에 실패했다고 인생이라는 게임 자체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이어라키의 상대성을 인식하면, 천한것이 귀한 것이기도 하고 귀한 것이 천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 하이어라키 내의 절대 다수인 민(하이어라키의 아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