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홍길주는 항상 <깨달음>에 대해 말했다.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깨달음은 도덕의 으뜸가는 부적이다.
才不如勤, 勤不如悟, 悟之一字道德之元符也. 1-48
여기서는 번역에 약간 손을 댈 필요가 있다. 도덕(道德)이라고 하는 말은 현대어에 있어 도덕(morality)에 대응하는 번역 술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홍길주가 도덕이라고 한 말은 <도>와 <덕>으로 각각의 개념을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두 개념은 유학에 있어서나 동양사상 전반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으로 일면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위의 문장에서는 <진리>와 <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시금 번역하면, '깨달음이라는 한 글자는 진리와 실천에 있어 최고의 방편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부적>이라고 하는 표현에 대한 현대적 술어로 <보증수표>나, <표지판>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가 협소해지고 고전적 원의가 훼손되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여 <방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방편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홍길주에게 있어 <깨달음>이 결코 도와 덕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깨달음>도 방법론적인 문제인 것이다. 홍길주의 <깨달음>은 좌우도 없고 남북도 없다.
4.1.1 <깨달음>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 홍길주의 이력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수학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제곱근 풀이법은 기존의 <<구장산술>>이나 <<수리정온>>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 새로운 풀이법은 조선의 산목 계산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풀이법이었다. 이는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의 가문의 가학이 <수학>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그의 어머니에 관해 전해지는 일화들을 토대로 추정할 때, 그녀로부터 수학적 재능과 지식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4.1.2 홍길주가 강조하는 <깨달음>과 <수학>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교과목의 <수학>이 암기과목으로 변질되어 가는 세태와는 달리, 수학은 기본적으로 <깨달음의 학문>이다. '아, 집열쇠를 두고 나왔구나.'하는 일상적인 기억에서 시작해서, 바둑을 두다가 '아, 이곳을 두면 이기겠구나.'하는 이성적 추론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런 광범위한 깨달음에 대한 정의는 논의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좀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집열쇠를 두고 나온 것을 떠올리는 것은 단기적인 기억상실과 회복이므로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렵고, 바둑을 두다가 좋은 수가 떠오른 것은 복잡미묘한 추산과정을 통해 <어떤 해답에 이르른 것>이므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홍길주에게 있어 <깨달음>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4.2 수학의 <공식>이란 그 자체를 암기하여 문제를 푸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어떻게 공식이 만들어 졌는지를 <깨닫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글을 읽을 때 수백번을 넘는 법이 없었다. 적게는 3,40번 읽고 그만두곤 했다. 매번 벗 가운데 배움에 힘쓰는 자가 책 한 권을 천 번이나 만번씩 읽어 '이같이 하지 않고는 힘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의 재주와 역량이란 각기 마땅한 바가 있게 마련이니 일정한 규칙을 세워 따르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余讀書, 無過數百遍者, 少或止三四十過. 每見士友力學者, 一書或讀千萬籌, 以爲不如此, 不可得力. 盖人之才量, 各有所當, 不可以一定之規矩率之耳. 1-50
여기서 3,40번이라면 질릴만한 횟수이지만, 당대로 본다면 턱없이 적은 것이다. 이미지에 빗대자면 교실에서 맨앞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노트 필기하고, 그것을 빨강,노랑,파랑의 형광펜으로 분류한 다음 열심히 암기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선생님의 질문에는 척척 답해내는 학생이 있다. 홍길주는 분명 후자다. 일부 논문에서는 홍길주를 형인 홍석주와 동생인 홍현주 사이에서 자신을 경계하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선비의 삶을 실천하려는 <모범적인 학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가 훌륭한 학자가 아니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경을 치켜올리며 수업시간마다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그런 모범적인 학생도 아니라고 본다. 단적인 예로 그는 낮잠을 즐겼는데 바로 그가 애독하던 <<논어>>에, 공자가 재여의 낮잠을 두고 '썩은 나무에다가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 할수 없다. 내가 재여에게 무슨 꾸지람을 하겠는가?(朽木不可雕也,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하고 꾸짖는 장면이 나옴에도, 그는 낮잠을 즐겼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것을 <학문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그의 반론을 들어보자.
가령 한권의 책이 대략 7,80면 쯤된다고 해도 그 정화를 추려내면 10여면에 지나지 않는다. 속된 선비는 처음 부터 다읽지만, 그 알맹이의 소재는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자는 손가는 대로 뒤적이며 지나쳐도 핵심이 되는 곳에 저절로 눈길이 가닿는다. 그래서 한 권안에서 단지 10여면만 따져보고 멈추어도 전부 읽은 사람보다 보람이 두배나 된다. 이런 까닭에 남들이 바야흐로 두세권의 책을 읽을 적에 나는 이미 백권을 읽어치울 수 있고, 보람을 얻는 것 또한 남보다 배나 된다.
假如一卷書約七八十葉, 捃其菁華不過十數葉, 俗士從頭盡讀, 而不知其菁華之所在. 唯有悟者, 信手披過而菁華處, 自觸于眼, 一卷之內, 只究了十數葉而止, 其見功倍于盡讀者. 以故人方讀二三卷書, 我已了各百卷, 而見功亦倍於人. 1-48
피타고라스의 공식을 알고 있다면(혹은 깨달았다면) 삼각형의 모양이 어떻든 상관없다. 일단 직각 삼각형이기만 하다면 우리는 빗변의 길이와 나머지 변들의 길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요컨대 항해의 <깨달음>이란 이런 개념인 것이다.
4.3 그의 독서나 문장론에 있어 <깨달음>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과연 <<논어>>에 대한 그의 깨달음은 무엇일까.
4.3.1 전편에 살펴보았지만, 그는 <<논어>>를 일용이륜평이절근지사(日用彛倫平易切近之事)라고 표현한다. 일종의 문화적 <보편성>을 주장하는 셈이다. 그가 보편성의 예시로 들고 있는 논어 <학이>나 <향당>편의 기사들은 사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별로 보편적이진 않다. 그리고 내용도 별 게 없다. <향당>편의 경우엔, 공자의 일상적인 모습에 대한 기술을 통해 예의 전범을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보이는데, 잠 잘 땐 시체처럼 똑바로 누워자지 않았고 상복 입은 사람을 보면 반드시 예를 표하셨다 등의 짤막짤막한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홍길주 자신도 거침없이 낮잠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이러한 구체적인 행동양식에 대한 규범적 보편성을 강조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홍길주가 살았던 조선 후기는 공자의 시대와 어느 정도 유사한 문화적 양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강조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4.3.2 개념적으로 구분하자면 이를 <양식의 보편성>과 <가치의 보편성>으로 구분할 수 잇을 것이며 홍길주의 방점은 후자에 있는 것이다. 그가 논어를 <보편성>의 관점에서 본다는 가정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논어에 대한 그의 <해석>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4.4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홍길주의 논어 해석은 너무도 평이해서 별로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오규 소라이와 같은 기발한 해석도 없고 송유들과 같이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지도 않다. 홍길주의 저술에서 그러한 기발함이나 형이상학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는 그것이 <<논어>>의 본뜻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4.4.1 <<항해 논어>>의 첫 장으로 들어가보자.
자유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너무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하고, 붕우간에 너무 자주 충고하면 멀어지게 마련이다."
子遊曰 : 事君數, 斯辱矣.朋友數, 斯疏矣. <<논어>>이인 26
집주든, 소주든 위의 구절에 대한 해석은 동일하다. 소위 간쟁설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삭數>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과 관계가 있다. 주자나 그 이전의 고주들은 모두 이 <삭>을 자주 간언하다,충고하다의 뜻으로 새겼다. 따라서 위와 같은 해석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해는 이를 그렇게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논어>>의 사군삭 장의 집주와 소주는 모두 간쟁설을 위주로 했다. 나는 말한다."여기에 한가지 주장을 제시하니 본장의 바른 뜻을 해칠까 염려된다.
論語事君數章集注及小注,皆主諫爭設. 余謂此備一說, 則可恐非本章正義. 1-75
일단 번역이 좀 의심스럽다. 이 논문의 수여삼필에 대한 번역은 <<19세기 조선지식인의 생각창고>>를 따르고 있는데 종종 문맥이 맞지 않거나 애매한 듯한 번역이 많다. 이 사군삭장에 관한 항해의 언급을 다룬 부분도 그러한데, 아마도 역자가 전체적인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여위차비일설 이하를 보면, 내가 여기 한가지 주장을 제시하니, 이는 (간쟁설이) 본장의 바른 의미를 왜곡할까 두려워서이다. 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해가 기껏 사군삭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주장이 본장의 바른 뜻을 해칠까 두렵다고 하는 것은 어색한 표현이다. 문법이나 번역은 모르겠지만 전체의 흐름을 보았을 때 당연히 위의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좌우에서 보필하여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올리는 자의 경우에는 진실로 하루라도 천자를 뵙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낮은 벼슬 아치나 일반 관료들이 임금의 곁에 자주 있게 되면 마침내는 반드시 친숙해져서 친압하는 신하가 되고 마니 그 몸을 욕되게 함이 아니겠는가
人臣事君, 如左右輔弼之朝夕納誨者, 固不可一日不見天子, 卑官庶僚數數於人主之側, 則終必爲近習昵嬖之臣, 非辱其身乎.
이어서 그는 사군삭, 소욕의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덧붙이는데 <삭>을 <자주>의 의미로만 새기고 있다. 욕됨의 원인이 <자주 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붕우삭에 대한 해석에서도 반복된다.
벗 사이에 좋은 정을 길이 보존하는 것은 오래 떨어져 있고 이따금 만나는 데 달려있다. 오래 헤어져 있다 보면 반드시 그리워하게 되고, 이따금식 만나면 반드시 기뻐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은 그 얼굴과 마찬가지다. 진실로 아침저녁으로 서로 만나 하는 말이나 일마다 서로 관계된다면 비록 기질이나 취향이 평소에 가깝던 사람이라도 마침내 반드시 맞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또한 소원해지는 단서가 아니겠는가?
朋友情號\好之永保, 在離久而遇罕, 蓋離久則必思, 遇罕則必驩. 人心不同, 如其面焉. 苟其朝夕相見, 言言事事而相關也, 雖氣味素近者, 終必有不合處, 是又非浸疏之端乎.
항해는 여기에서도 <삭>을 <자주>의 의미로 새긴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같이 살다보면 이것저것 부딪히고 싸우고 다시는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반대로 별로 친할 것 같지 않은 성향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결국 <만남의 횟수>와 관련이 있다고 항해는 말하는 것이다. 수학자다운 통찰이라고나 할까.
'패시브인컴 만들기 > 취미번역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길주 - 사서와 육경 속 논어의 위치 (0) | 2020.03.27 |
---|---|
홍길주 - 논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중심으로 (0) | 2020.03.27 |
홍길주 - 수여삼필 속 논어를 중심으로 (0) | 2020.03.27 |
관물편 - 이익의 인생과 등산 (0) | 2020.03.27 |
관물편 - 개와 사람의 천직 (0) | 2020.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