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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인컴 만들기/취미번역들

홍길주 - 논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중심으로

3. 1. <<항해논어>>에 등장하는 논어의 구절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앞서 언급했다. 그리고 그것은 구절뿐만이 아니라 <장>의 구분으로도 제한적인데 논어 전편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다.

 

 

 

3.1.1 방필에 6목, 연필에 7목, 난필에 8목, 난필 속에 6목으로 <<수여제필>>가운데 논어는 매우 일정한 비율로 인용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지표(index)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말해, 공자가 자신의 제자들을 가르칠 때 <시>를 하나의 이상적인 커리큘럼 과목으로 상정한 것과 동일하게 항해에게 있어 사유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논어>>가 자리잡고 있다는 가정 말이다.

 

 

 

3.1.2 논어의 구절이 아닌 <<논어>>라는 텍스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항해의 평이 등장하는 것은 <<연필>>의 71목과 72목이다. 

 

 

 

 나는 여러 경전 가운데 유독 <<논어>>를 가장 으뜸가는 글로 생각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余於諸經中, 獨以論語爲上上等文,何也?

 

 

하고 시작하는 71목은 <<항해 논어>>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 이유를 항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요순 이래로 여러 성인 가운데 오직 공자가 나에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이 책 덕분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시경>>과 <<서경>>또한 한 보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자식과 더불어 이를 말하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만약 후세에 단지 <<예기>>나 <<가어>>같은 여러 책만 있고 <<논어>>가 없었더라면 뒷사람으로 하여금 앞서 말한 것처럼 '성인을 직접 뵌 것' 같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식은 이렇게 말했다. "<<논어>>만이 사람들에게 몸소 성인을 뵙는 것 같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글이 간결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 또한 근사하다.

 

大底堯舜已下群聖人, 惟孔子於我最親者, 是書之力也. 繇是言之, 雖詩書, 亦讓一頭地矣. 嘗與兒子言此, 因曰: "使世後, 只有禮記家語等諸書, 而無論語, 卽便不能使後人如親見聖人, 若上所云也."兒子曰:"論語之獨能使人如親見聖人者, 其文簡故耳."說亦近之.

 

 

   여기서 <<가어(家語)>>란, <<공자가어(孔子家語)>>를 말한다. <<공자가어>>는 공안국이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책인데, <<논어>>가 공자의 어록집이라고 한다면, 공자가어는 그 어록의 배경이 되는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해에게 있어 가어는 논어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다. 이러한 <논어빠>의 정신은 72목에도 반복되어 등장한다.

 

 

 

 자식이 내게 물었다. "<<논어>>는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이 기록한 것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글이 어째서 육경의 으뜸이 될 수 있습니까?"

 

 兒子問; "論語, 非出一人手, 蓋集群弟子所記而編之者. 其文何以能爲六經之尤?"

 

 

그의 자식 아마도 홍우건으로 추측되는 아이의 질문은, 항해가 논어를 <육경의 으뜸>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항해의 답변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대한 일종의 텍스트 비평적 관점을 포함한다.

 

 

 내가 말했다. " 반드시 많은 기록을 모아서 산정하고 회통하게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학문이 깊었을테지. 게다가 여러 제자들이 모두 직접 성인의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그 말과 행동을 기록함에 진실하고 합당하기에 힘을 쏟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한 가지도 보태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다면 공자께서 스스로 기록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논어>> 한 책은 비록 공자의 글이라 해도 괜찮다. <<시경>>과 <<서경>>을 공자께서 추려내어 기록했음에도 이처럼 좋으니, 하물며 공자의 글이겠는가?

 

余曰:"是必有集衆錄,而刪定會通之者. 其人必深於學故也. 且諸子皆親炙聖人, 記其言動, 務要眞實的當, 無一遺漏而亦無一衍溢. 如是卽便與夫子所自記無異. 大抵論語一部, 雖謂之夫子之文, 可也. 詩書經, 夫子刪述, 便如此好, 況夫子之文乎?"

 

 

 앞의 우건의 질문부터 다시 살펴보면, 항해는 우건의 질문에 대해 먼저 '한사람의 손을 거쳤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일인이 논어를 모두 기록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학식이 높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혹은 그 이후의 사람에 의해 논어가 <편집>되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논어>>는 우건의 주장과는 달리 단지 이사람 저사람의 기록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일관된 사상(항해에게 있어선 그것이 공자의 사상이라고 가정된 것으로 보인다)적 관점에 의해 편집된 책이다.

 

 

 

 다음으로, 기록의 신빙성에 대한 항해의 주장 -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한가지도 보태지 않았을 것이다 -은 과장된 부분은 있으나 현재의 <<논어>> 텍스트 비평의 관점에서 보아도 타당하다. <<논어>>에는 분명 아주 고층대에 속하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다. 현재로서 발화의 정확한 출처나 배경까지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 그러한 사실이야말로 <<논어>>가 공자의 고제(안회,자로, 자공 등)에 의한 기록이라는 추측에 확신을 더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