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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물편 - 변변치 않은 이들을 위한 위로

변변치 않은 것들을 위한 쌉쌀한 위로

 

봄이 되자 작약이 활짝 피어났는데 개중에는 붉은 색이 선명하여 아리따운 것도 있고 색이 흐려 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내가 말했다. “저 변변치 못한 꽃이 없었다면 이 꽃의 훌륭함이 어떻게 뚜렷하게 드러나겠는가?

方春紅藥盛開, 或有色赤而艶者, 或有色淺而賤者. 翁曰: “不有彼劣, 安著乎此優?

 이익, 『관물편』, 11

 

 

어느 책에선가 본 어느 경제학자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그것이 말콤 글래드웰의 책이었는지 팀하포드의 책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득이 7만달러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소득과 행복감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어느 경제학자는 소득을 측정하는 단위에 비해 행복감을 측정하는 도구가 그만큼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통계적 착시이며 사실과 다르다고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교하게 행복감을 측정할만한 도구를 제시하지 못한 탓에, 일단은 앞의 통계를 어느 정도 사실을 반영한다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바닷물과 마찬가지다.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먹어봐야 계속 짜기만 할 뿐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7만달러 이상의 소득은 행복감을 증진시켜주지 못한다는 사실. 물론 7만달러를 벌기가 그리 쉬운 일이냐,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며 이런 논의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돈이 다가 아니야라는 말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에게 허황된 조언인 것과 마찬가지로, ‘돈만 있으면 장땡이라는 말이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 두는 것이 그리 쓸모 없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라는 소박한 격려가 실은 내 이웃보다는 잘 살아야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소박하게 남들만큼 살기를 바랬으나 내 주위의 지인이나 가족들은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집 평수가 같은 아파트라면 최소한 TV는 한 사이즈 이상 더 커야 하고, 아이는 한 등급 좋은 대학을 가야 하며, 연봉도 앞 자리가 달라야 한다. 물론 낮은 쪽으로가 아니라 높은 쪽으로. 전문직이라면 더 좋고, 아니라면 아내나 남편이라도 잘 나야 하며,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사를 가라.

 

 

  하지만 세상 어디엘 가든 나보다 잘 난 사람이 있다. 아니 사실 훨씬 많은 것 같다. 나는 그걸 꽤 일찌감치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 생기고 돈이 많고 똑똑하고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그들보다 잘 생겨질 수도, 돈이 많아질 수도, 똑똑해질 수도 없다. 뭐 노력하면 똑똑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조금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엄청 똑똑해질 것 같지도 않다. 나머지는 개선의 가능성도 별로 없다. 나는 변변한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였지, 변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것의 쓸모가 변변한 것을 돋보이게 혹은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변변한 것들이야 이런 위로가 없어도 살만할지도 모르지만, 확률적으로 우리 중 대다수가 속해 있을 변변치 못한 것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너희도 변변한 것이야 라는 달콤한 기만이 아니라, 변변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쌉쌀한 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