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마음과 멀어지고 말았구나
나는 나무 심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꽃에 탐닉함을 경계하여, 꽃은 피지 않고 열매만 맺는 나무를 심었다. 이후에 먹을 수 있는 열매도 맺고, 즐길 만한 꽃도 피는 나무를 심다가, 나중에는 열매는 없이 어여쁜 꽃만 피는 나무를 심게 되었으니, 처음의 마음과 비교하면 많이 멀어지고 말았다.
星湖翁喜種樹. 始戒花荒, 惟取有實. 旣而有實可食而花亦可玩者, 在所不棄, 久則無實而花艶者皆取, 視始心則遠矣.
이익, 『관물편』, 1칙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든 몰래 새벽 1시에 보고 싶다고 카톡을 보내든, 소주를 마시고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며 소리를 지르든가 하지 않는 이상 알아낼 길이 없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사라진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연애를 시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남자 입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변했어’라는 말이다. 물론 누구나 변한다. 더 좋아하게 되는 것도 변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체로 반대쪽, 덜 좋아하게 되는 쪽으로 마음이 변한다. 신경을 덜 쓰게 되고 덜 보고 싶고 거슬리지 않던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같이 있는 시간이 따분해지고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잘못은 아니다. 상대도 변한다. 처음에는 작은 친절에도 기뻤지만 더 이상 기쁘지 않다. 더 자상하게 대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더 잘 챙겨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사람의 마음은 원래부터 처음의 마음과 멀어지고 변하게 되는 것일 뿐이고 누구도 탓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처음의 마음과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언젠가 깨달았다. 계기는 잊어버렸다. 아마도 시시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체로 뭔가를 깨닫게 되는 계기는 시시하니까.
그래도 그때 느꼈던 감정은 기억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건은 시간이 지나 흐릿해졌어도 감정은또렷하게 남아있다. 가슴 한 켠이 아릿하게 저며오는 감각. 나는 그것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낄 때마다 동시에 아릿하게 저며오는 감각이 떠오른다. 망설이게 된다. 망설임을 뿌리치고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편이 편하다. 포기하면 편하다.
정답은 없다. 쉬운 정답은 정답이 아니다. 어렵다고 꼭 정답이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결론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는 쉬운 정답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밟히고 뒤통수를 맞은 뒤에야 ‘정답 비슷한 것’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남은 것은 타인이 건네준 쉬운 정답지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스스로 정답을 향해 계속 살아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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