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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 - 뇌수술 기록

동각(動覺)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무슨 뜻일까. 한자어 표기로만 보면 움직인다. 깨닫는다는 말인데. 인체와 관련지어 이해한다면 요즘 말로 인지 능력과 운동 능력을 말하는 것도 같다..


16세기 유럽의 의학 지식과 당시 조선의 의학 지식이 뒤섞여 있어 독해가 쉽지 않다. 나중에 따로 스터디라도 해야 할판
그래도 나름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대충 뭔소리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나는 이걸 한의학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아무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딴 데가서는 이렇게 부르면 안된다.


시작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의학에서는 정, 기, 신으로 인체의 생물학적 시스템을 구분한다. 우리가 뼈와 근육 지방 등의 물리적 성분에 따라 구분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직관적이기도 하다.


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첫번째 물리적 실체의 단계이다. 심플하게 물질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는 인체를 움직이는 힘이다. 물질은 아니다. 비물질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질도 비물질도 아닌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뾰족한 수 없이 기라는 말로 그대로 쓴다. 그나마 한자 문화권에서는 기라고만 해도 얼추 알아듣겠지만 그 외의 문화권에는 좀 난감한 개념인 셈이다.


은 정신이다. 마인드. 영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암튼 비물질이다.


그러니까 한의학에서 인체를 정,기,신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기능적인 개념 설정이라고 본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몸에 정을 쌓는 것이고 그것이 기로 변하여 몸을 움직이고 그렇게 되면 신이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신이 움직이면 그 다음엔 거꾸로 신이 기를 움직여 정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섹스다.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밥을 먹는 것과 섹스를 하는 것은 정반대의 작용인 셈이다.


앞서의 글부터 쭉 보면 사람이 먹은 음식이 어떻게 흡수되고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는데 이런 틀을 가지고 보면 조금 쉽게 이해 된다.


그리고 이규경도 이런 개념의 틀에서 나름의 아나토미를 구성하고 있는듯 하다. 아래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요약하면,


간 - 체성의 기 
심- 생양,내열의 기
뇌- 동각의 기


위와 같다.

조금 더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간 - 체성의 기       : 영양의 소화 능력
심- 생양,내열의 기 : 인체의 성장, 재생, 유지 능력
뇌- 동각의 기        : 인지 및 운동 능력


그리고 이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희조신어의 사례가 재미있다. 당시로서는 일종의 뇌수술인 셈. 말에서 떨어져 뇌가 깨졌다는 표현을 보면 두개골 파열이 의심된다. 눈동자가 빙빙 도는 것은 안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뇌에 이상이 생겼음을 말해주고 신혼이 나갔다는 것은 아마도 뇌진탕으로 인한 의식 소실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소의 뇌를 처발처발하고 가죽을 덧댄 것은 뇌의 손상 부위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뇌에는 통각이 없으니..살아난 뒤에 밥도 먹고 돌아다녓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운동 능력은 멀쩡했는데 인지 능력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읽었던 글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딴사람 같았다는 표현에서 전두엽, 측두엽이 모두 손상된 것은 아닐까 싶다.




[원문] 오주연문장전산고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정태현 (공역) ┃ 1982
[윤문] 알프

 
 

인체(人體)의 내외(內外) 총상(總象)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19)


뼈가 있고 살이 있어 몸의 형체가 갖추어졌다고 해도 반드시 열기(熱)로 생(生)하고, 피(血)로 기르고(養), 기(氣)로 동각(動覺)하는 것이 있어야지, 여기에서 하나만 결여되어도 하늘이 사람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三肢)는 몸의 군주(君主)역할을 하는 것으로, 심(心)ㆍ간(肝)ㆍ뇌(腦)로, 나머지 기관(肢體)은 모두 이들의 명령을 받는다.

 ​논하건대, 피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반드시 음식을 자료로 하는 것인데, 음식은 먼저 치아(齒刀)를 거치고 다음에 위(胃)를 거쳐서 크고 자잘한 것들이 모두 대락(大絡)으로 돌아간다. 다만 자잘한 것은 간(肝)ㆍ뇌(腦)에 올라가 피가 되고, 큰 것은 찌꺼기가 되는데, 자잘한 것만 남기고 큰 것을 걸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 곧 비장(脾)이고, 인체에 해를 끼치는 여러 가지 독성을 제거하는 기관이 담낭(膽)이며, 아직 소화되지 않은 것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기관이 곧 신장(腎)이다.

 ​비장, 담낭, 신장이 모두 피를 생성하는 기관이기는 하나, 홀로 변결(變結)하여 다시 체성(體性)의 기(氣)를 생성하는 간(肝)만 못하기 때문에 간이 귀한 것이요, 심(心)은 내열(內熱)과 생양(生養)의 기를 이루고, 뇌(腦)는 세미(細微)한 동각(動覺)의 기를 생하기 때문에 모두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