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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인컴 만들기/취미번역들

관물편 - 개와 사람의 천직

우리 집 개가 낫구나!

 

개에게 밥을 던져 먹이고 있었다. 손님이 지나가자, 개가 밥그릇을 내팽개치고 사람을 쫓아가 짖어댔다. 이로서 타고난 직분(天職)은 사사로운 욕심으로 폐할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投飯與狗食. 客過, 狗舍飯而隨人吠. 以是見天職不可以殉欲而廢矣.

이익, 『관물편』, 77째

 

세종대왕의 손자의 손자, 이암(李巖, 1499~?)이라는 사람은 왕족치고는 좀 특이한 사람으로 하고 많은 그림 소재 가운데 당시에도,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잡스럽다’고 무시 받는 개나 고양이 그림을 자주 그렸다. ‘어미개그림(母犬圖)’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졌다. 젖을 물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과 상대적으로 힘이 없어서인지 어려서 인지 어미 등을 타고 젖을 향해 가는 강아지, 그를 바라보는 어미개의 표정이 리얼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림을 그린 이암이 개에게 느끼던 애정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듯 하다.

 

 

 

최세진이 1527년 세상에 데뷔시킨 음운학의 스테디 셀러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책을 보면, 개는 그 크기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해 표기하고 있다. 견(犬) < 구(狗) < 오(獒). 견이 가장 작은 개, 구가 중간 크기, 오는 아주 큰 개를 말한다. 여기서는 구라고 묘사하고 있으니 아마도 보통 크기의 개로 보인다.

 

 

 

본편의 주인공 “개”는, 모두가 같은 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본편 외에도 다섯 군데에나 출현하고 있다. 한번은 들짐승에게 잡아 먹힐 뻔한 닭을 구해주었는데, 닭이 이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개가 낳은 새끼를 난폭하게 쪼아대어 이익이 ‘닭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닭의 편을 들어주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대목에서는 동물의 미덕에 대해 논하면서 “개의 너그러움(狗之寬)”이 덕이라고 하면 덕이겠지만, 그럼 그 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되물으며, 개의 쓸모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개를 바라보는 이익의 관점들이 재미있다. 

 

 

 

 ‘밥을 주고 있었다’라는 표현에서, 누가 밥을 주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익 본인일 수도 아니면 다른 사람(시종)일 수도 있다. 다른 에피소드와 비교해보면 ‘본인’이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엔 ‘늙은이(翁)’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좀 많다.

 

 

 

천직은 문자 그대로 ‘타고난 직분’을 의미하는 말로, 이는 유교의 핵심 경전 가운데 하나인 『중용(中庸)』의 첫머리, ‘하늘이 명한 것을 곧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구절의 ‘하늘’ 관념과 관련이 있다. 주자학은 바로 이 구절에 대해 ‘성은 곧 이치다(性卽理)’라고 주장하면서 발화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의 바통을 넘겨 받은 조선의 사대부들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 하늘이 명한 바가 어떻게 인간에게 현실적으로 드러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좀 신비한 관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서시의 구절을 보면 그런 ‘관념’이 적어도 1941년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요즘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하고 누군가 호통을 친다면 좀 우습게 들리기는 하겠지만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는 대강 전달이 가능하다.

 

 

 

앞 마당의 개의 행동을 통해 하늘이 생명에 품부한 ‘성(性)’ 즉, 천직이 결코 욕심에 의해 가리워질 수 없다고 이익은 주장하고 있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개에 따라서는 낯선 사람이 지나가건 말건 밥만 먹는 놈도 있으며, 오히려 낯선 사람이 주는 밥을 좋다고 꼬리를 치며 따라가는 놈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을 보면 짓는 행동이 반드시 개의 천직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 의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천직은 단지 타고난 직분이라는 의미 말고 또 다른 의미인 ‘관직(官職)’이라는 뜻이 있다. 이익은 이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개’를 현실정치인에, ‘밥그릇’을 그들이 사사로이 채우는 욕심, 뇌물 따위에 대한 비유로 놓아보자. 장희빈의 복위를 주청하다 곤장을 맞고 죽은 셋 째 형에 대한 상처를 안고, 그로 인한 정치 혐오로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채 은거하며 공부에 전념했던 이익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놈들아, 우리 집 마당의 개도 밥그릇 보다 천직에 충실하건만, 네 놈들은 어째서 밥그릇만 쫓느냐, 우리 집 개가 더 낫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