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를 아끼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건가?
내가 누에 기르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누에는 사람에게 의지하여 밥을 얻어 먹는다. 사람이 길러주지 않으면 스스로 자라지 못한다. 반면, 사람은 누에를 통해 쓸모를 얻는다. 누에가 실을 만들지 못하면 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누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하면서, 한편으로는 누에 번데기를 솥에 넣어 삶아 먹고, 그리하여 다시 누에에게 원한을 품게 하였다며, 이를 애처롭게 여기어 열심히 누에를 보살핀다. 아하, 원한이 이익에서 비롯되는구나. 어찌 은혜를 베푸는 행동이 꼭 따뜻한 마음에서만 비롯되는 것이겠는가.
翁觀養蚕. 蚕待人而食也. 不養不遂. 人待蚕有用者也. 無絲則不養. 謂人爲恩, 將蛹而烹之. 謂人爲怨, 護惜之已勤. 噫, 怨旣由利, 恩獨由仁乎哉.
이익, 『관물편』, 8번째
혐오스러워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이 유투브에 화제의 영상으로 회자되기도 한 ‘한국음식 번데기’의 기원은 언제일까? 사용자 참여형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60년대의 근대화 과정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제사공장이 많이 생겨나고, 이때 공장에서 나온 다량의 번데기가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서민들의 식품으로 이용되며 대중적인 음식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굳이 기원을 따진다면, 조선에서도 누에 번데기를 삶아 먹었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보이므로 이는 잘못이다. 60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는 일종의 잡학 백과사전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또한 《오잡조》(五雜組)에, “영남(嶺南)에서는 개란(螘卵)과 이무기[蚺蛇]를 모두 진귀한 반찬으로 여기며, 비오리[水鷄]와 두꺼비는 사실 비슷한 종류인데, 비오리를 즐겨 먹는다.”고 하였으며, 이 밖에도 후세 사람들이 먹는 곤충은 많다. 흙번데기[土蛹]ㆍ누에 번데기[蠶蛹]ㆍ우렁이[田螺]ㆍ가재[石蟹]ㆍ계수나무굼벵이[桂蠹]를 먹었고, 또 밀즉[蜜喞]은 털이 나지 않은 쥐새끼인데, 꿀[蜜]에 담갔다가 먹었고, 좌어(坐魚)는 바로 비오리이며, 천하(川鰕)는 세속에서 사홍(沙虹 새우의 별칭)의 종류라 칭하는데, 모두 곤충에 속하는 것들로서 중원 사람들은 보통으로 먹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먹는 사람이 있으니, 옛날에 지해(蚳醢)를 썼다는 것을 어찌 이상하게 여기겠는가.” 라고 했으므로, 이에 대충 증정하는 바이다.
본문의 팽(烹)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팽’으로 ‘솥에 넣고 불을 떼어 삶아 먹는다’고 하는 ‘식용의 의미’가 있다. 번데기가 정확하게 어떤 맛이었는지, 지금과 완벽하게 같은 형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도 비슷한 예가 보이므로, 양잠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음식의 한 형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누에를 기르고 번데기를 삶아 먹고 하는 모습은 양잠이 성행하던 조선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었다. 이익은 그것을 보고 짤막한 감상을 남겼는데, 흥미롭게도 양잠의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인간의 심성에 관한 아폴로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포항제철 방문 감상문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잠언을 블로그에 남긴 셈이다.
원한이 이익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지금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뉴스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비극적인 사건을 접한다.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살해한 가장의 이야기. 자신이 몸 담은 기관의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 민간인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사람들. 공금을 횡령하고 수백 명의 직원을 실직자로 내몰고 해외로 도주하려던 사장. 이들 모두가 ‘이익’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방점은 ‘은혜로운 행동’에 있다.
사람들이 누에를 보살피는 ‘은혜로운 행동’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다. 누에가 너무 예뻐서 요즘 말로 ‘심쿵’이어서 어찌할 줄 모르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실을 얻기 위해 누에에게 알랑거리는 행동인 것이다. 누에가 알든 모르든.
누에 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들을 돌아보자. 내가 아끼는 것들이 진정 그것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내가 취하고자 하는 ‘이득’에서 시작된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맹자는 ‘사람에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따뜻한 마음(仁)이 존재하는 단서로 삼을만 하다’고 했으나, 이익은 이렇게 말한다.
“그 측은한 마음이라는 게 실을 뽑으려고 누에를 기르고 미안해서 잘 대해주는 거라면, 그것을 가지고 따뜻한 마음에서 그랬다고 할 수 있겠냐?”
뜨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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