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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인컴 만들기/취미번역들

관물편 - 조선의 반려견 사랑

그림자를 쫓는 개, 이익의 눈물

 

 

내가 기르던 개가, 어느 날 미친개에게 물리더니만 갑자기 독이 발작해서 역시 미쳐버렸다. 다시 다른 개를 물었고, 물 때마다 다른 개도 미쳐버렸다. 이에 온 마을의 개들이 모두 미쳐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고 온전한 놈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다. “개가 미친 건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쳐도, 혹시라도 사람을 물어 사람이 미쳐버릴까 두렵구나.” 

 

 翁畜狗, 一日爲猘犬所噬, 俄而毒發亦狂. 又噬他狗, 輒噬輒狂. 於是村狗皆狂, 遊走遠近, 蓋無全者. 翁曰: “狗之狂猶可, 或恐噬人而人狂.” 

 

이익, 『관물편』, 45칙

 
 

이익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다. 마치 영화 『사일런트 힐(Silent Hill)』의 서두에 깔리는 나레이션 같다. 이어서 뿌연 안개가 관객의 시야를 가리고,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사이렌처럼 울려 퍼지는 황량한 마을이 등장한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듯 이익은 중얼거린다. 

  

 

‘사람을 물까 걱정이구나’

  

 

그런데, 이 글에서 이익의 태도는 좀 이상하다. 이익은 개를 때려잡지 않는다. 하인을 시키면 간단하게 해결될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방도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관망하듯 사태를 지켜본다. 그의 감정이 드러난 부분은 단 한 곳, ‘걱정이다’라는 구절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는 사고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처럼 객관적인 말투를 유지하고 있다. 이익은 이 짧은 리포트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했던 것일까?


 

『성호전집』에 「미친개(瘈犬)」이라는 이름의 시가 실려 있다.
 

 

네가 이 모든 재앙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추악한 무리들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럽고, 

너를 가리켜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자니, 입을 벌려 남을 해치려 날뛰었었지.

(중략)

길러온 마음에 연연하여, 참아오다 재앙을 기르고 말았네. 

작은 것을 아끼다 큰 것을 해쳤으니, 이웃사람들에게 너무도 부끄럽구나.1

 
 

 

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이익의 나약함이 사단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끄럽다’는 것은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러지 못하여 사태가 악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 ‘집사(執事)’라는 말이 있는데,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동물을 ‘기른다’고 여기지만, 알고 보면 거꾸로 동물이 ‘부리는’ 집사나 마찬가지라는 우스개 소리에서 나온 표현이다. 

  

 

 나는 이 글에서 조선의 유학자 성호 이익이 아닌, ‘집사 이익’과 마주한다. 사서 오경에 기초한 도덕적 원리와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도학자 대신, 광견병에 걸린 자신의 개를 어찌하지 못해 동네의 모든 개가 전염될 때까지 방치하고 만 ‘나약한 인간’이 여기 있다.  
 

 

‘사람을 물까 걱정이구나’ 라는 이익의 말이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사람을 물지만 않는다면 네가 죽을 일이 없겠건만, 그렇지 않을 것이니 걱정이구나. 너를 차마 죽일 수 없고 네가 사람들 손에 죽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제발 사람만은 물지 말거라.”


 

 

하지만 이익의 바람도 무색하게, 이익의 개는 다른 개를 물었고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게 되었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 미친개를 때려잡았다. 그리고 기뻐하며 성대한 잔치를 벌여 잡은 개의 고기를 나눠 먹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슬프도다, 저 많은 개들이 그림자만 쫓아 짖어댔구나.2


 

 

‘그림자를 쫓다(逐影,)’라는 표현은, 광견병에 걸린 개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여 아무나 보고 짖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주석
1  謂汝皆作櫱。獨恠衆醜並。謂汝是無辜。張口害物競。(중략) 徒緣育養憐。隱忍釀禍盛。小惜卽大殘。始愧隣人請。 출처: 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 성호전집(星湖全集) > 星湖先生全集卷之一 > 詩 >瘈犬 a_198_064d 


2  嗚呼彼羣犬。一一事逐影。출처: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