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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눈

건강의 기본 원칙- 밥, 잠, 똥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원리는 간단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된다.

 

 

즉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능을 점검하면 된다(三生而萬物).

 

 

소화Digestion, 수면 Sleep, 배설Excretion

 

 

역으로 말하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건강 검진 결과와 상관없이 몸이 안 좋은 것이다. 

 

 

1. 잠 Sleep

최근에는 Why we sleep 같은 책을 통해 수면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지만, 사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잠을 양(시간)적인 요소로 받아들인다. 어찌되었든 7시간만 자면 된다는 식으로. 그러나 인간이 잠을 자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주행성 동물이기 때문이며 이 시스템은 어림잡아 몇 억년은 유지된 것으로 이를 거부하면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대량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거듭하는 현상은, 전구가 발명된 것이 1879년의 일이니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인류의 습관이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따르는 행위를 유교문명에서는 양생養生이라고 불렀다.

 

 

 

기본적으로 해가 지면 활동 곡선의 흐름을 그와 유사하게 낮추는 것이 지혜다. 음식을 먹지 않고 과도한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피하고 되도록 일찍 잠이 드는 것이다.  Why we sleep의 저자 매튜 워커가 지적했듯이 잠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nothings can fix the problem of your sleep deprivation).

 

 

10시- 5시 혹은 부득이 하다면 11시-6시 정도의 수면시간은 지키는 편이 좋다. 仙 수행의 전통에서는 자시를 매우 중요한 시간으로 생각하는데 (오후 11시-오전1시) 바로 이 시간에 몸의 리프레시 과정이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一陽이 動하다). 청소년 기에 이 시간에 수면을 잘 취하는 것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연구가 아니더라도 이 시간에 수면을 취한 뒤, 자신의 몸을 섬세히 관찰해보면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중용이 시중이라는 말처럼 잠은 타이밍(Timing)인 것이다.

 

 

 

2. 소화 Digestion

 일일삼식一日三食이라는 습관은 근대적 발명이다. 조선시대만 하여도 일일 이식二食 정도였고, 이는 다른 전통 사회도 엇비슷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구조상 특히 직장인이라면 이식의 시간대가 애매하다. 점심시간이 주로 12-1시에 놓여 있고, 퇴근이 6시 이후가 되므로 부득이 해 가 진후 두 번째 식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아침을 가볍게 유동식으로 먹고, 점심을 먹고 싶은 음식을 취하고, 저녁은 최대한 안 먹은 듯 가볍게 먹는 방식의 일일 삼식이다. 참을 수 있다면 저녁을 안먹는 것도 좋은데, 아니면 오후 4시 정도에 간단한 요기를 하고 저녁을 안 먹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직장인 이 아니라 굳이 삼식을 할 필요가 없다면 10-11시정도에 일식을 하고 오후 3-4시정도에 이식을 하여 일일 이식의 습관을 갖는 것이 소화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현대인의 질병은 못먹어서라기 보다 과도하게 먹어서 발생하는 질병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이런 방식의 지속적인 대량의 영양 공급을 견딜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지 않다. 즉, 어느 정도의 영양 부족에 익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잘 먹는다의 '잘'을 '많이'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3.배설 Excretion

 배설은 일종의 체크시스템이다. 내가 잘자고 잘 먹었다면 그 결과로 잘 배설하게 된다. 배설이 잘 안되면 어느 쪽으로든 습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있는데, 배설이 잘 안된다면, 기존의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일 수 가 있다. 이때는 병원을 통해 정확히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심각한 질병이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운동 부족이다.

 

 

 배설은 땀을 배출하는 것과 같은 노폐물의 체외 배출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장구한 시간을 인간은 일정량 이상의 운동을 해야만 섭취를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천 칼로리의 영양을 소화 기관에 욱여넣을 수 있는 재주가 없었다. 따라서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자연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된다면 본인이 흥미가 있는 운동을 하루 30분이라도 하는게 좋다.

 

 

 

따로 운동을 하기 힘들다면,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는 정도도 충분하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한두시간에 한 번 정도는 일어서서 굳어진 몸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생각 외로 가만히 앉아서 ㅋ보드를 두드리는 작업은 육체에 큰 부담을 준다. 언뜻 생각하면 걷거나 달리거나 하는 게 몸에 부담이 더 될 것 같지만, 이런 종류의 압력은 신체를 더 강건하게 만든다. 자연적인 순환을 가속화한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육체를 부패하게 만든다.

 

 

 

 

불가의 전통은 치열한 좌선을 몇 달 씩 하는 경우를 보여주지만, 사실 이는 오랜 행자승의 기간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처음 절에 들어가면 막일부터한다. 이는 육체를 주로 움직이는 것으로 자연히 몸을 단련하는 것이다. 피트니스센터와 같이 몸을 좋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몸의 자연적인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것이면, 이를 통해 몸이 건강한 자기 피드백을 만들어낸 다음에, 좌선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융합의 눈 - 신비주의적 합리성

 

건강 비법이라고 주스를 만들어 마시고, 기괴한 동작을 취하고 호흡으로 불덩어리를 만들어서 신비한 체험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일시적 방편이다. 그런 것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시적 상황에서 필요한 한시적 전략이다. 우리는 삶의 어느 시기에 그동안 미뤄뒀던 숙제가 혼돈의 용(Dragon of Chaos)처럼 한꺼번에 거대하게 밀려드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이때 우리는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특히나 합리적이었던 사람이라면 열심히 비합리적인 방법(신비주의)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은 필요한 과정이다. 그림자(shadow)가 가진 속성을 체화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나면 우리는 결국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선가禪家, Zen tradition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합리성Rationality)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혼돈의 용Dragons of chaos)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신비주의Mysticism)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신비주의를 거친 합리성Mystical Rationality)

 

 

 

종행의 합리성은 신비주의를 거쳐온 합리성이다. 신비주의적 합리성이다. 우리는 이렇게 대극(opposite)을 오가는 과정 속에 지혜를 발견한다. 이 지혜는 시스템 2가 시스템1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건강'의 의미다.

 

 

 

우리는 밥을 챙겨먹는 낮(합리성)에서 꿈과 잠이 지배하는 밤(혼돈의용, 신비주의)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다시 시작하는 아침에는 낮과 밤의 결합으로 생산된 새로운 낮의 합리성을 경험한다(배설). 이것이 도덕경세서 세 가지 과정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에서도 사용된 원리이다. 이것은 무슨 알아먹기 어려운 종교 교리가 아니다. 불보듯 뻔한 삶의 패턴이고 오래된 양생의 지혜다.

 

 

 

음양의 패턴에는 음속의 양 양 속의 음이 있다. 성학십도와 같이 오래된 자료에는 모두 그 지혜가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히 남자로 완전히 여자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낮에는 마초와 같은 남성적 원리에 지배를 받는 자가 밤에는 한없이 수용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여성적 원리에 지배되기도 한다. 수용=여성, 폭력=남성이 전근대적인 편견의 소산이라는 주장은 일부 맞고 대체로 틀렸다.

 

 

 

 

인간 종은 통계적으로 남성이 신체적으로 힘이 세다. 즉 폭력에 우위를 점한다. 이것은 그저 어느날 나타난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황제 펭귄처럼 자녀 양육에 딱히 성역할의 차이가 없는 그런 종이 아니다. 인류는 남성에 해당하는 개체가 폭력을 담당하고 여성에 해당하는 개체가 친목을 담당했다. 즉 인류를 통계내어 가장 폭력적인 개체를 추적하면 대부분이 남성이고, 가장 온화한 개체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 중간의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는 배치되지 않는 관찰이다. 교집합이 없다면 이 둘은 서로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밥,잠,똥 이 세가지는 Input - Output의 관계로 설명할 수도 있다.

 

밥 = input

잠 = Digestion

똥 = output

 

 

이때는 잠이 소화기능을 담당한다. 우리의 정신은 외부의 관념과 감정, 생각(Food)을 잠을 자면서 소화하고(Dream) 그 결과로 멀쩡한 의식(system2, Concsiousness)을 건강하게 유지한다. 따라서 여기서 3은 심플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추상화된 해석 원리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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