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관련 포스팅에 앞서 관련 번역서들을 정리해보았다.
카타오카 이치타케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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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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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분석을 창시하고 그 이론을 확립시킨 프로이트를 발판 삼아 정신분석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라캉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살펴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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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정신의학
저자 브루스 핑크는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영미권에서 대표적인 라캉 연구자로 손꼽히고 있는 학자로, 이 책은 이제껏 아카데믹한 인문학적 담론 가운데서 주로 논의되던 라캉의 사상을 정신분석 임상이라는 차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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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라캉은 정신분석의 임상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편이 쉽기도 하고, 원래의 라캉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즉 라캉 정신분석의 복잡함과 난해함은 그 자체의 현학적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목도하는 증상과 환자들을 돕기 위한 레퍼런스로서 창조된 것이라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초중후기의 라캉처럼) 이론은 변화하며 때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명제를 내포한다.
그러나 역으로 정신병의 사례와 같이 구체적인 증례에서 출발하면 라캉의 가설과 개념은 이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임을 손쉽게 납득할 수 있다. 일례로, 상상계와 상징계와 같이 일견 애매모호한 개념들은 결국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분하는 일종의 지표로 활용된다. 신경증은 상징계에 뿌리를 내리지만, 정신병은 오직 상상계만이 남아 있다. 따라서 정신병자는 “새로운 은유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은유를 가져다 쓸 뿐이다.
카타오카의 책은 1부가 본인의 정신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평이한 언어로 그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철학이나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쉽다. 그렇다고 크게 요지를 벗어난 지점도 없다. 라캉의 정신 분석이란 게 도대체 뭐지? 다른 정신분석과는 뭐가 다르지, 심리치료와는 어떻게 다를까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라캉의 정신분석이 무엇인지를 해설했다. 입문서로 가장 높게 쳐주고 싶은 부분이다.
라캉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2부 또한 현학적 논의를 피하면서도 비교적 명료하게 요지를 전달한다. 단, 그 명료함 자체가 가끔은 정신분석의 적이 되기도 한다는 점만 조심하면.
부르스 핑크는 라캉의 유일한 저작인 에크리(ecrit)의 영역본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쉽게 읽히는 라캉을 쓸 줄 아는 저자다. 그렇다고 얄팍하지 않다. 한국에서 에크리가 4명의 공동저자에 의해 발간된 사실을 떠올려보면, 핑크 혼자서 저 책을 번역해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그 자신이 분석가이기 때문에 라캉의 개념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
“라캉과 정신의학”은 바로 그 본령에서 라캉적 정신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설파한다. 영역본으로도 보았는데, 문체가 평이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친근하다. 즉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살짝 문턱이 있지만, 그래도 다른 라캉 관련 해설서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고 앞서 소개한 카타오카의 책을 읽었다면 더 수월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 번역된 에크리는 가격이 13만원 정도로 조금 부담스러운 반면, 영역본은 국내 서점에서 3만원 안쪽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아직 국내본을 보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어-영어, 프랑스어-한국어 사이의 친연관계에 근거해 추측해보면 영역본이 더 낫지 싶다. 물론 국내 번역본 역자들의 노고는 치하받아야 마땅하다. 결과물의 성취도는 둘째치고 이를 번역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점과 장장 25년에 걸쳐 번역을 마무리지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차 학계등으로부터 반응이 있을테고, 피판이나 비평에 직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시작과 창조가 가장 고된 법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리언 리더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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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라캉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가 남녀의 정체성과 고독, 남자와 여자가 서로 추구하는 환상, 그리고 그것이 번번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남녀의 필연적인 차이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사랑과 결혼, 외도와 질투 등 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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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어 리더는 내가 편애하는 라캉 해설가이다. 보다 정신분석의 학문적이고 정신의학적인 측면을 알고 싶다면 까치에서 나온 “광기”를 추천하지만, 현재 품절 상태다. 도서관에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조용한 광기라는 이 블로그에서도 포스팅을 했던 개념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가는데, 결론만 요약하자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병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병이라고 하면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을 때리거나 하는 폭력적인 모습, 혹은 괴상한 말을 중얼거리거나 행색이 괴이한 ‘별난 행동’을 상상하지만, 멀쩡하게 보이는 정신병자도 존재한다. 이런 개념의 필요성은 임상적으로 확인되는데, 이런 환자들은 대개 오랜 세월 구축한 “망상”을 통해 제정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를 다른 일반적인 신경증자등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게 되면, 이들이 망상에 의해 유지하던 체계는 붕괴하고 정신병이 촉발되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이것을 통계적으로 조사하거나 증명할 순 없지만,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망상이 부정당하면 제 정신이 붕괴되는 이유를 라캉은 이들에게 ‘상징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대체물을 만드는 데 그게 바로 망상이다. 정신병적 구조는 한 번 세워지면 다른 형태(예를 들어 신경증자의 구조)로 바뀔 수가 없기에 이를 무리하게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즉 분석가가 할 일은 그들의 망상이 망상이라는 사실을 꺠닫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망상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망상의 안정적인 구축을 도와주는 역할이다.
리더는 여러번 읽으면 참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번역 탓인지 원 저자의 문체 탓인지 핑크만큼 읽기가 쉽진 않다.
“여자에게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의 원서 제목은 “왜 여자들은 부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편지를 쓸까?(Why do women write more letters that they post?)”이다. 이 제목과 관련해서 넷플릭스의 시리즈물이 생각났다. 한국어 제목이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이었나 그렇다. 원제는 To all the boys I loved before. 동명의 소설 원작이 있는데 저자가 제니한(Jenny Han)으로 미국 버지니아에서 출생해서 쭉 성장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의 엄마가 한국인으로 나오고 주인공들이 한복을 입는 모습도 보인다.
리더가 이 책을 통해 시도한 것은 남녀의 정신적 성차에 대해 논한 것이다. 성차와 관련된 근본적이고 대담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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