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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구증 치료기

나는 성대 구증이다. 성대 구증에서 '구'는 도랑처럼 홈이 파였다는 뜻의 한자라고 한다. 풀어 쓰면, 성대에 도랑처럼 홈이 파인 증상의 질환을 말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흔히 쇳소리, 쉰 목소리가 나는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내가 처음 이 증상을 자각하게 된 것은 신기하게도 대학생이 되어, 노래방에 가서였다. 그 전에는 나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거나 쉰소리가 난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어릴 적에는 얇고 높은 소리를 위주로 내어서 그랬던 걸까. 아무튼 내가 깨닫게 된 계기는 이렇다. 노래방에서 고음을 내려고 했는데 고음이 안났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성이 안났던 것"이다. 

 

 

가성은 V자로 벌어진 성대가 부드럽게 접촉을 유지하면서 나는 소리인데, 구증이 있는 사람은 홈이 패여있어 내기가 어렵다. 이 사실을 나는 노래를 위한 발성 공부를 하다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고치려고 엄청 노력했다. 구증이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 말을 할 때 남들보다 힘들다. 왜냐면 홈이 패여 있어서 호흡의 효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발성에 필요한 호흡 100을 밀어올리면 패여진 홈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호흡이 유실된다. 게다가 성대 접촉이 딱 하고 안되니 붙이려고 힘을 줘야 하고 긴장된 소리가 나고 목 주위의 근육이 더 쉽게 피로해진다. 

 

 

사실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그래서 말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발성 연습을 하던 중에 이걸 고쳐야만 가성이 나고 가성이 나야 고음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김명기 님의 보컬 강의를 들으면서 연습을 했다. 신기하게도 구증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였는지, 연습 덕분이었는지 가성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음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한 십여년이 지날 동안 내 목소리에 불만은 없었다. 회사에서 세일즈 전화를 많이 하거나 고객 응대를 많이 한 날이면 목이 피로하고 쉬곤 했지만, 하루 정도 쉬면 회복이 되었고, 내 목소리를 내가 직접 듣는 일이 없으니 별로 거슬리지도 않았다. 

 

 

 

노래 목소리가 아니라 평소 목소리의 발성을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서른이 넘어가면서 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평소에도 정리나 청소를 좋아해서 몸에 난 고장 같은 것으로 여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성대구증 치료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치료 법은 크게 두 가지다.

 

 

1. 레이저 치료

     성대의 홈에 레이저를 쏘아 조직이 자동 회복되는 원리를 이용해 치료하는 방법. 

 

2. 발성 치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지만, 구증 환자는 평소 발성이 안 좋은 습관이 많아 이를 개선하여 수술 없이 치료하는 방법

 

 

1번이 땡겼으나 후기가 좋지 않았다. 부작용이 있었다. 전보다 더 안좋아진 사례도 있었고, 수술 시 전신 마취를 한다든가 한 달 가까이 목소리를 거의 내면 안된다던가 하는 실행하기 힘든 지점들이 있었다. 

 

 

그래서 2번으로 갔다. 당시 백만원인가 그보다 더 줬던 것 같다. 발성을 개선해주는 클리닉에 가서 자신의 발성을 녹음해 들어보고 발성 연습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방식이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돈이 좀 아까웠다. 그곳에서 하는 방법들이 대체로 내가 노래 공부를 할 때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달랐던 점은 성악적인 발성법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성대를 더 꽉 붙이는 방식으로 말할 것을 주문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내 목소리가 별로 듣기 좋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목소리가 살짝 힘이 없긴 해도 나긋나긋해서 듣기 편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다니다가, 연습 기간이 남았음에도 더 이상 가질 않게 되었다. (클리닉을 다니던 당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목소리가 듣기 안 좋아졌다는 쪽이었다, 오히려 의외긴 해도 그 전에는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반응도 아주 가아끔 있었던 반면에)

 

 

 

그러다가 스스로 발성이 편해졌다(좋아졌다가 아니다)고 느낀 계기는 좀 의외의 이벤트였다. 바로 영어 공부로 쉐도잉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말을 할 때 발성이 쉬워진 것이다. 영어 공부를 했는데, 발성 연습이 된 꼴이다. 

 

 

나는 성대구증이 아주 심하지는 않은 정도지만 그래도 말할 때 힘이 들었다. 그 괴로움은 아마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냥 말을 하는 데 힘이 들다니. 하지만 고통이란 건 정말 상대적인 거라, 그런 걸 태어나서부터 그리고 살아가는 내내 당연하게 안고 사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그 고통이 없던 상태가 비교불가하니까 이게 힘든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른다. 하지만 발성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거꾸로 아, 과거의 내가 정말 힘들게 말을 했었구나 하는 사실이 느껴진다. 

 

 

 

이젠 한국어 발음을 조금씩 연습하려 한다. 마치 배우들이 연습하듯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을 정확히 하는 연습 말이다. 성대구증은 어차피 평생 치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발성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잡아볼 때, 개선 가능한 부분이 더 많다. 

 

 

목소리(음색) -성대구증 

발음 - 개선 가능(발음 교정 연습)

호흡 - 개선 가능(복식 호흡)

자세 - 개선 가능 (목의 긴장을 덜어주는 턱을 당긴 바른 자세)

 

 

 

성대구증을 안고 살아가면서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왜 나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성대를 가지지 못했을까 하는 한탄을 종종 했다. 나도 그랬다면 좀더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성을 만나는 일이 더 쉽지 않았을까, 더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 누구도 완벽한 삶을 선물받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의 조건이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게임을 해야 한다. 그게 룰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나의 디스어드밴티지라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어왔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부족함이 나의 인생을 규정짓는 게 아니라, 그 조건 하에서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나의 인생을 정의한다. 

 

 

 

나는 함께 노래방에 간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는(장난 아니고 진심 듣기 싫어서) 고음불가에서 오, 노래 꽤 하네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다. 목소리를 낼 때 힘이 많이 들어서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하던 사람에서, 비록 들리는 목소리에는 큰 차이가 없어졌을지라도 편하게 발성하는 법을 익혀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자리가 두렵거나 불편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대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 대신 가진 것에 집중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이 사실을 나는 성대구증과 싸우면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