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네구경/은행생활

은행 취업기

1. 졸업 전 취업에 성공하다니 나도 못 믿겠다

 

 여기서 '성공'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스스로에게 다행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3학년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취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 토익 시험을 본 경험도 없었으며, 인턴을 해보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막연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 까, 라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 시기는 당장은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나는 열성적으로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네트워킹에 뛰어난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어중간한 상태로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4학년이 되었고, 하나둘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고, 또 취업준비는 하고 있는지 같은 말들이 안부인사화되어가기 시작하자, 나도 서서히 '이거, 취업을 알아봐야 하나'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열리는 취업 설명회에 참가했다. 간단한 이력, 이력이라고 해봐야 알바 몇 개랑 과외가 전부지만그거라도 적어 제출한 뒤, 가상 면접 비슷한 걸 봤다. 학교에서 배려해준 일종의 예비 취준생 경험이랄까. 결과는 끔찍했다. 면접관의 입은 열심히 준비하고, 앞으로 미래가 있으며 등등의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었지만, 눈은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너는 취업 안 될 거야."

 

 

마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2평 남짓 골방에 누워 천장을 보니 서러웠다. 내가 준비하지 않은 건데, 왜 서러웠을까. 나는 막연히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굴러가다 보면 어딘가 닿아있겠지. 물론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닿은 곳이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티브이에나 나오는 노력 없이도 운에 의해 모든 것이 잘되는 그런 미래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참 늦은 시기였지만, 토익을 준비해서 시험을 봤다.  800초반이 나왔다. 820이었나 그랬다.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해서(그리고 더 좋은 점수가 나올지 어쩔지 몰라서) 이만하면 됐으니 이제 이걸 가지고 자소서를 뿌려보자, 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나는 문학 전공자였으므로 출판사 같은 곳을 생각 중이었다. 어쨌든 책이랑 가까우면 좋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전부 떨어졌다.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부터 문제집 만드는 곳까지 모조리. 4학년 1학기의 끝이 가까워오고 있었고, 조바심이 났다. 출판사가 안되면 나머진 다 똑같지 뭐 라는 생각으로 그 뒤론 지원가능한 회사에는 모두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2군데서 연락이 왔다. 1금융권 은행과 2금융권 은행에서였다. 

 

 

 

좀 의아했다. 내 스펙 어디에 은행에서 좋아할만한 구석이 있었는가 싶은데, 사주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사주에는 금융업과 인연이 있는 걸로 나온다), 아무튼 면접을 봤고, 합격을 했다. 2금융권 은행에서는 최종면접을 안 갔다. 1금융권 은행에서 먼저 합격 통지를 받아서였다. 사실 지금이야 1금융이니 2금융이니 차이를 알지만, 주끄럽게도 당시에는 그 차이도 몰랐다. 2금융쪽 발표가 먼저 였으면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든 취업만 시켜주세요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그리하여 4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안심했다. 적어도 당분간 먹고 살 수는 있겠다 싶었다. 결코 그 뒤로 십 년 이상 그 직장을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알바건 뭐건 진득하니 오래 해본 적이 없었기에. 

 

 

 

사실 어떻게 은행에 들어가셨어요, 라는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은 저거다. 딱히 내가 한 게 없다. 면접도 망쳤다고 생각했다. 자기 소개를 잔뜩 준비해온 참가자들과 달리 나는 준비도 못했었다(첫 면접이어서 그런 걸 준비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네트워킹도 없어서 취업 때 뭘 입고 가면 되는지 그런 것도 인터넷으로 확인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알바 면접 보러가는 기분이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다른 데 또 보고, 그 정도 기분. 그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자신감으로 비춰졌던 걸까. 

 

 

 

뭐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듯이, 그 이후의 적응 기간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동네구경 > 은행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취업기 - 초보 직장인의 고충  (0)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