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편 - 좋기만 한 것은 없어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으랴
쥐가 창고에 쌓아놓은 곡식을 먹어 치우고, 쥐구멍 속에 살면서 수시로 나타나는데, 고양이가 이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족제비가 와 살기 시작하자, 쥐들이 바로 멀리 달아나 버렸다. 사람들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족제비가 닭장을 뚫고 들어와 닭을 잡아먹을까 두려워했다. 내가 말했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는 법이다.”
鼠嚙藏穀, 穴居而時出, 猫不能去也. 黃鼠來居, 鼠則遠矣. 人以爲益, 但懼入塒而攫鷄. 翁曰: “物無全功矣.”
이익, 『관물편』, 67칙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점을 쳤다. 처음부터 남의 점을 봐준 건 아니지만 하도 오랫동안 그러고돌아다녔더니 차츰 경력(?)이 알려져, 주위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 친구랑은 3개월을 못 가겠네. 곧 두 사람 정도가 나타나는 데 이 사람과 만나겠네. 마치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 도사인 냥, 남의 인생사에 개입한다는 도의적인 부담은 조금도 느끼지 않고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해주곤 했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게 꽤 잘 맞았다.
나에게 점을 봤던 한 여자는 사귀는 사람과 잘 맞지 않았고 자주 싸웠고 남자가 폭력적인 성향마저 있어서 헤어지기를 늘 소망하던 사람이었다. 아마 점을 보지 않아도 그런 남자라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주변에서 말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주위의 ‘상식적인 조언’이 잘 통하지 않았고 답답한 마음에 친구가 본인과 함께 나를 찾아왔었다. 여기사 신기하게도 점괘대로 3개월만에 헤어졌고 모두 잘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헤어진 남친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시 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구 남친과 다시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어쩌면 단순히 자신의 미래나 운명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에 점을 보는 게 아닌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그 불안감이, 사람들을 점집으로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이루어 질까. 아니면 실패하게 될까.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을까 저렇게 하는 것이 나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선택할 수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어주어야 한다. 두 개를 다 얻을 수는 없다. 고민이 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양 다리를 걸치는 일은 기발한 솔루션이 아니다. 결국 두 사람을 다 잃게 될 테니.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루이스 씨케이가 공연에서 자신과 같은 외모(또래에게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노안)의 20대 남성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지? 아냐. 지금 너희 또래에게 인기 많은 꽃미남처럼 잘 생긴 놈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여자 친구를 잔뜩 사귈 수 있어. 당연히 부럽겠지.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녀석들의 유일한 장점인 외모가 별볼일 없어지면 실의에 빠지게 되지(웃음). 멘붕이 오는 거야. 예전만큼 외모로 안 먹히거든. 너희들과 큰 차이가 없어질걸. 그때가 되면 너희도 그리 나쁘게 보이는 외모도 아니고. 여자도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의 외모를 덜 보게 되거든. 게다가 너희에게는 그동안 쌓아온 유머 감각이 있지. 그러니 충분히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어! 20년만 기다려!”
외모는 선택할 수 없다. 의지와는 무관한, 그보다는 의지가 생겨나기도 전에 엄마와 아빠라는 두 사람의 자연스런 호감과 끌림이라는 우연에 의해 우리의 외모는 대부분 결정되어버린다.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외모로 태어날 가능성이 더 많다. 조금 일반화하여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운명 자체를 선택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좋기만 한 건 없어.